권지영 · 조아라 : 흐릿한 행방
Cloudy Whereabou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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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의 대사 중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슬픔이라는 단어를 ‘예술작품’으로 바꿔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작품을 보았을 때 어떤 이는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와 느낀 점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가 하면, 서서히 물들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만 남거나 시간이 지나서야 그 감정이 뭔지 깨닫는 사람도 있다. 이 이야기를 그랜드캐니언 투어에 갔던 경험으로 이어가고 싶다.
투어 자동차는 새벽에서 아침을 향해 달렸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희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막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 불빛조차 없이 검회색으로 짙게 물들었고, 자동차 내부는 김이 서려 바깥 풍경을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 마주한 풍경의 실재와 상상이 섞여 마음속 어딘가 툭 하고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사막 가는 길의 흐릿한 풍경을 마주했던 감정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 그날의 기분과 감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 풍경을 응시하며 마치 상상 공간을 투과하듯 보이지 않는 실마리나 행방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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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가는 길의 풍경 (이시우 촬영, 미국 애리조나주, 2022. 04.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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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부터 겨울에 걸쳐 권지영, 조아라 작가를 만나 전시를 준비하였다. 두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사막 가는 길에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떠올랐다. 사막 가는 길의 흐릿한 풍경과 사막에 도착해서 마주한 모습이 그림과 도자 오브제로 재현된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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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풍경 (이시우 촬영, 미국 애리조나주, 2022. 04.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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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작가는 하얀색 캔버스 앞에서 아름다움을 닮은 무엇인가 찾아와 줄 것이라고 믿으며 붓질한다. 그는 보는 이의 마음속에 존재하거나 새롭지만 어디선가 분명 만난 적 있는 순간들을 그리길 원하며, 그 과정에서 모호함을 즐긴다.
그만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듯 감정이나 분위기를 가져와 캔버스에 부딪히게 하고, 시간 차이를 두고 다시 흩어지게 하면서 추상화로 표현한다. 그러다 캔버스 위에서 해소되지 않거나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시를 써 내려가 마음을 채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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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 wildflowers>, Acrylic on wood panel, 23㎝ x 30.5㎝,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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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ert wildflowers> 설치 전경 (조아라 촬영, 미국 휴스턴 텍사스, 2023. 03.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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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rmur of orchestra 3>, Acrylic, gouache and spray paint on canvas, 56㎝ x 71㎝,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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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rmur of orchestra 3> 설치 전경 (조아라 촬영, 미국 휴스턴 텍사스, 2023. 03.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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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le spring rain>, Acrylic on wood panel, 23㎝ x 30.5㎝, 2023 (조아라 촬영, 미국 휴스턴 텍사스, 2023.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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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작가는 “관람객이 마음을 열고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려요. 그림을 보면서 마치 실마리를 찾는 것 같은 마음으로요.”라고 전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캔버스에 펼쳐진 몇 개의 레이어가 눈에 띈다. 그러다 유심히 바라보면 몇 개가 수십 개가 되는데, 그곳을 하나씩 걷어내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투명에 가깝고 따뜻한 색상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다가 반투명하고 닫힌 레이어에 들어가면 뿌연 연기가 자욱한 장면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는 상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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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Acrylic and gouache on wood panel, 28㎝ x 35.5㎝,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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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from Dawn>, Acrylic on canvas, 13㎝ x 18㎝,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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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영 작가는 형태가 없는 기억을 흙과 실을 통해 재구성하여 작업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사건, 사물 등에서 실마리를 얻어 형상을 만든다. 만들어진 조각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어떠한 순간의 잔상만을 표현하기도 한다. 서로 연관이 없는 듯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조각들은 작가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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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들>, Mixed media, 가변설치,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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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 ’>, Ceramic, 12.6 × 4 × 20.5(㎝),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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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Ceramic, Wire and Mixed yarn, 7 × 5 × 38(㎝),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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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버려진 종이나 비닐조각을 모아 동그랗게 뭉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음식을 할 때도 대부분의 반죽 재료는 동그랗게 뭉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필자는 이와 비슷하게 작가의 동그란 형태의 오브제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작년 여름에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동그란 형태의 오브제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기억을 표현하다 보니 추상적인 동그란 형태로 만들고, 여기에 찰나에 느꼈던 흐릿한 감정은 다양한 색상의 패턴을 입혀 표현한다. 그리고 기억이 조금 선명한 때는 좀 더 구체적인 형태의 오브제, 그림, 색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작품의 첫인상은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몇 번 보다 보면 속 깊은 대화도 가능한 진지하고 우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의 오브제를 보고 마른 사막 한가운데 피어있는 연약해 보이지만 그곳에 뿌리내리기 위해 버텨낸 작은 꽃이 연상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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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피어나는 것들>, Ceramic, Wire and Mixed yarn, 7.2 × 7.3 ×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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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my summer>, Ceramic, Wire and Mixed yarn, 8.3 × 8.8 × 20.5(㎝),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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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마주하면 다소 모호하고 엉뚱하지만,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열정은 확고하며 진지하다. 그래서 그들의 캔버스와 오브제를 들여다보면 무언가 존재하는 듯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내내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서서히 혹은 휘몰아 다가올 수 있다.
조아라 작가는 신작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대지가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합창하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며 작업하였다. 땅에서 자라는 꽃과 나무 등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 각자의 소리를 내어 캔버스 위에서 합창하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붓질하였다.
캔버스 위 생명체는 다른 소리를 받쳐주기 위해 소곤대며 고요한 저음을 내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힘껏 소리칠 거라고 상상하면서, 우리 귀는 들을 수 없어도 마음은 들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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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rmur of orchestra 2>, Acrylic, gouache and spray paint on canvas, 56㎝ x 71㎝,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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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rmur of orchestra 4>, Acrylic, gouache and spray paint on canvas, 56㎝ x 71㎝,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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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noon prayer>, Acrylic on canvas, 13㎝ x 18㎝, 2023 (조아라 촬영, 미국 휴스턴 텍사스, 2023. 03.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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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영 작가는 작년 한 해 작가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였다. 그러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 스케치도 다시 시작하고, 다양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연구하였다. 그는 요즘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는 듯 보인다.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으면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방향을 잃었을 땐 잠시 서성이다가 다시 걸음을 떼듯 손을 움직여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담아 작업하였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보고 느꼈던 흐릿하면서도 뚜렷한 기억들을 조각 속에 담았어요. 그러면서 모호했던 나날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어요. 전시에 오시는 분들께 그러한 흔적이 닿았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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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숭생숭>, Ceramic, Wire and Mixed yarn, 22.5 × 6 × 19(㎝),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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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ee trees>, Ceramic, 23 × 5 × 18(cm),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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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No. 4>, Ceramic, 17.2 × 13.6 × 27.8(㎝), 2023; <반짝! No. 5>, Ceramic, 11.5 × 9.5 × 15.3(cm),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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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 Ceramic, Iron and Mixed yarn, 23 × 21.5 × 70(㎝),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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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Ceramic, Iron and Mixed yarn, 40.3 × 10 × 79(㎝),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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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나 작품은 결국에는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회화나 공예라는 장르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권지영, 조아라 작가의 <흐릿한 행방>은 관람객에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다가가고 싶다.
두 작가가 펼쳐놓은 흐릿한 풍경을 거닐며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헤매도 된다.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실마리를 찾으면 그 길로 가보기도 하고, 가봤더니 여전히 모르겠다면 그걸로 괜찮은 시간이길 바란다.
작년 4월, 사막 가는 길에 흐릿한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빼곡하게 메모하면서 ‘언젠가 전시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1년 후인 지금 권지영 작가, 조아라 작가와 함께 전시를 소개하게 되었다.
전시를 준비면서 두 작가의 자유로움과 엉뚱함이 낯선 순간도 있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고 행복했다. 마음이 가는 거라 설명할 수 없지만 점점 그들의 작품에 스며들어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흐릿한 행방>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무채색 예술적 취향에 다양한 색을 입혀준 두 분에게 또렷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Until the next time we can cheers in person again, be happy and healthy. Big thank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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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아라
한국어로 생각하는 미국인입니다. 동양인, 여자, 이민자... 그 전에 ‘조아라’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가끔 누군가 제멋대로 Ah Cho? 라고 부르면 'Ah Ra Cho'라고 고쳐줍니다. 휴스턴 텍사스에서 그림을 그리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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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권지영
일기를 쓰듯 조각들을 만들고 무언가를 그려냅니다. 문득문득 떠오르거나 보았던, 보는, 보고 싶은 것들을 담아내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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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글 이시우
건축학을 전공하고 정책연구기관에서 석사연구원으로 일하며 도시설계 및 자원순환 분야를 연구했다. 지금은 기획자로서 작가와 공간을 이어주고, 작품이 관람객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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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um Visitor, You! siumuseum@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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