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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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나무들이 단 한 번의 바람에 흔들려 춤출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빛을 만끽할 때쯤 빛은 금세 그림자로 바뀌거나 사라져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이 꽤 소중하고,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마음은 사랑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작년 여름, 선물 같은 순간을 마주했을 때 누군가 떠올라 ‘사랑’과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전시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런 후 사랑에 대해 생각날 때마다 써 내려갔다.
사랑은 나와 타자 혹은 어떤 대상이 만나 둘이 되었을 때 이루어지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존재한다. 기쁘고 아름다우며 행복하고, 인내와 기다림, 고통과 슬픔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랑이 싹트며 그 힘으로 버티기도 한다.
어떠한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긍정과 부정적 감정을 모두 감싸 안으며 감내하는 것이니 힘든 순간마저 사랑의 범주에 포함 시켜야 한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경험하고도 기어이 다시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감수하면서 지속하는 것을 보면 설명이 된다.
전시 제목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러한 이유로 기획 초기 단계부터 사랑의 총체라는 부제를 떠올리면서 준비하였고 작가와 기획자만 아는 문장으로 숨겨놓았다. 그리고 두 작가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시를 위해 사랑의 총체적 감각을 떠올리며 각자의 캔버스에 그들이 해석한 사랑을 차곡히 쌓아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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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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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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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와 당신들의 사랑을 그려내면서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듯했어요. 사랑은 매 순간 기쁨과 슬픔, 그리움의 형태로 우리 곁에 있었고, 슬그머니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종종 사람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을 자주 그리는 아이러니함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스스로에 대해 사람을 향한 관심과 사랑은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어리숙한 아이 같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다가가는 것 대신 고요하게 대상을 관찰하는 과정을 통해 내적 친밀감을 쌓는다.
작가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자세히 볼수록 그들만의 귀여운 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후 그 대상을 관찰하면서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을 즐긴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마치 사랑한다는 말의 진지한 고백이 낯간지럽고 어려워 건네는 걸 포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를 웃게 해주고 달콤한 간식을 손에 잔뜩 들려주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슬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공간과 상황에서 만난 사람을 그리는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가장 가까이 있는 신비로운 생명체인 딸을 그리기 시작했다. 신작인 <사랑의 시선 5>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두 돌이 넘어가면서 말이 트인 솜이는 점점 원하는 걸 섬세하게 요구하고 있어요. 단순히 안아달라는 말 대신 ‘나를 반드시 선 자세로 뒤집어 안으면서 얼굴에 머리카락은 닿지 않도록 머리도 미리 넘겨놔라’ 같은 걸로 발전하더라고요. 이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솜이의 샤우팅을 정통으로 맞을 수 있어요.”
작가의 31개월 아기는 잘 웃다가도 울먹이고, 친근하다가 낯가리고, 온순하다가 고집을 피우는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부모로서 그런 존재를 상대하는 건 매 순간 높이를 알 수 없는 파도를 경험하는 기분일 테지만 결국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는다.
신작 중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보면 1>의 경우, 어린 시절 그가 경험했던 사랑을 떠올리면서 작업하였다. 키가 훌쩍 자랄 때까지 엄마 등에 업히는 걸 좋아했던 작가는 그 시절 엄마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피부의 말랑한 촉감, 살이 맞대어지는 순간에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사랑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머리에서는 흐릿해졌지만, 그때의 감정이 남아 마음으로 기억하는 순간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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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기억의 조각을 맞추다 보면 1>, 2024, Pigment on paper, 10x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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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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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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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민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랑과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삶의 해답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사랑을 곁에 둔다면 그 해답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찬란하게 아름다우면서도 공연히 슬퍼지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라고 전했다.
작가는 과거에 아버지를 떠나보낸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졌다. 갑자기 찾아온 이러한 삶의 변화는 작업의 시작이 되었고, 작품의 방향을 결정할 때 주제와 영감이 되었다.
그는 지난 전시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집중하여 유화 페인팅과 목탄드로잉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풀어낸 적이 있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 “단순히 아프고 슬픈 기억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현재 마주하는 아름답고 다정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슬픔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는데, 필자는 이 지점에서 사랑의 총체를 떠올렸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먼저 이미지를 상상하거나 수집하며, 여기에서 특정 상황과 인물의 부위만을 잘라서 캔버스에 담아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 상황과 과거의 기억을 결합하여 감정의 총체로서 회화로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누구라도 경험했을 모습을 캔버스 위에 담아서 보는 이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그 끝에는 사람과 사랑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은 작가가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1인칭 시점, 타인이 사랑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을 3인칭 시점으로 관찰한 모습을 담았다. 신작 중 <천천히 살고 싶었습니다(I wanted to live slowly)>의 경우, 그가 평소 어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던 내용을 담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중요한 걸 놓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삶의 한 시기를 묶어주던 매듭이 하염없이 풀려 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 시간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의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그렸어요.”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반려동물, 다정하게 편지를 써 내려가는 손, 애정을 주는 만큼 무성해지는 초록의 식물, 찰나의 계절에나 볼 수 있는 꽃, 누군가의 탄생의 순간과 기념일 등을 담은 신작을 소개한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 마음에 사뿐히 내려앉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든다. 이는 평소에 그가 작품 속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보는 이의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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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민, <천천히 살고 싶었습니다(I wanted to live slowly)>, 2024, Oil on canvas, 22x27.3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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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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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전경, 서간, 서울, 양이언 촬영(2024. 5.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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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랑은 발음도 글자도 비슷하고 두 단어가 유의어처럼 연결된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살포시 앉으면 하트가 된다”는 아름다운 노래 가사처럼 사람의 받침에 앉으면 동글한 사랑이 된다. 그러니 사람과 사랑은 뗄 수 없는 한 쌍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노래 가사, 영화나 소설이 그렇듯 사랑에 대해 풀어낸 기획자와 작가의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관람객의 마음에 가닿길 바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였다. 아슬 · 임지민 2인전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를 통해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마주친 순간에 사랑스러운 마음을 건네보기를, 마음에 여러 감정이 교차하더라도 결국은 사랑이었다고 떠올려보기를,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작가만의 방식으로 포착한 사랑이 담긴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분명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마음에 떠오를 것이다. 관람객은 그 대상을 추억하며 사랑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고, 그러한 사랑의 반복이 우리를 나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감해주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에서 좋아하는 문장을 빌려와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사랑은 끊임없이 삶을 새롭게 이어지도록 하는 계기이다. 이러한 새로운 이어짐이야말로 사랑을 진리의 절차로 만드는 결정적인 근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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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슬
모든 사람과 사물은 자세히 볼수록 그들만의 귀여운 점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이를 주로 발랄한 색채와 동글하지만 명확한 선으로 나타낸다. 관찰한 대상에 유쾌한 상상을 더 하여 바라보면 어쩐지 즐거워지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디지털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드로잉, 시각 및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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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임지민
뚜렷한 이유가 있는 ‘슬픔’이라는 감정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작업에 담는 이야기가 슬픔과 비슷하거나 규정하기 어려운 다른 감정들, 나아가 삶의 희로애락으로까지 그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현재는 유화 페인팅과 목탄드로잉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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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글 이시우
전시공간과 예술 작품을 좋아해서 미술관 가는 걸 즐기다 전시기획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물어보면 작가와 공간을 이어주는 일을 한다고 소개하며, 가끔은 타 분야 연구도 하면서 내면의 시야를 넓히고 있다. 여전히 작품이 관람객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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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서간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적어 보내는 글이라는 뜻의 서간은 자연 수형의 야생 초목 및 실내외 식물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식물 스튜디오다. 식물에 담긴 자연스러운 시간과 생동을 바라보며 고요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며 70년 넘은 구옥을 절박하게 고쳤다. 종종 공간과 어울리는 공예, 회화, 디자인 전시 등을 통해 서간을 다채롭게 기록해 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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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um Visitor, You! siumuseum@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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