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원 · 윤여동 2인전 S i l v e r S o u n d |
우리가 머물고 마주하는 대부분 공간에는 빛이 존재한다. 그곳에 자연광이 내려앉아 반짝이거나 인공조명이 대신 밝게 비춘다. 공간의 틈과 창문 사이로 빛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또 다른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든다. 빛은 물리적인 형태로 마주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힘든 순간에 한 점 빛줄기처럼 다가온다.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느껴지는 순간 무거운 감정이 사라지고 한걸음 떼어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한다. 오희원 작가와 윤여동 작가는 캔버스와 금속 등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지만, 모두 은색 표면에 반짝이는 빛을 품고 있다. 자연광이 그들의 작품에 부딪히면 은색 표면에 일렁이는 빛이 물결처럼 리듬을 타고 ‘Silver Sound(은빛 화음)’로 우리 마음에도 와닿는다. 뉴욕의 노구치뮤지엄은 자연광이 유난히 잘 들어와 빛나는 공간이 있다. 처음 그 공간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을 때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고 닫을 때까지 눈이 열린 틈 사이로 빛이 희미하게나마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눈을 완전히 감았을 때는 주변 사람, 조각품, 나무와 돌, 건축물 등 물리적 요소가 미세한 입자처럼 부서져 결국 빛의 모양처럼 변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오희원 작가의 작품을 보고 그때 경험이 떠올랐다. |
 | 노구치뮤지엄, 뉴욕, 이시우 촬영(2019. 09. 11) |
오희원 작가는 은분 캔버스 위에 대기, 빛의 반사와 번짐 등 비가시적 생성물을 담아낸다. 구체적인 형태를 연상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고, 불확실한 순간들이 중첩되어 이루어진 연속적인 과정이 캔버스에 채워진다. 그의 심상이나 경험 속 물리적 요소들이 캔버스 위에서 겹치고 흩어져 어떠한 무늬를 만들어내고, 은빛 위에 다양한 색상의 무늬는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 <Dispersion(blooming)>, 2021, Colorpencil on silver acrylic paint canvas, 60.6x40.9cm |
빛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영원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윤여동 작가의 금속 작품이 깨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빛의 의미와 연결되기도 한다. 금속에 대하여 누군가는 그 이미지가 다소 차갑고 도도하게 느껴진다고 하겠지만, 주변을 비춘다는 점에서 오히려 따뜻하고 친근하다. 의도적으로 어둡게 계획된 공간이라도 그곳을 비추는 빛은 충분해야 한다. 공간을 눈이 부실만큼 환하게 비춰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한 점 빛의 요소라도 희미하지만 단단하게 공간을 비추는 무언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리적인 형태라기보다 느껴지는 감각이다. |
윤여동 작가의 금속 오브제는 그렇게 단단하게 공간을 비추며 존재한다. 작년 가을, 저녁 시간에 그의 개인전을 찾았는데 전시공간의 조명을 배제하더라도 작품이 놓인 주변이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은빛 작품이 공간에 놓여 서로 마주하고, 빛처럼 부딪혀 닿았을 때 느낌은 마치 은빛 화음 같았다. |
 | 핸들위드케어, 서울, 이시우 촬영(2022. 10. 07) |
오희원 작가는 작업을 위해 캔버스 위에 은색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반복해서 올리고, 그런 후 비로소 은빛을 균등히 머금은 캔버스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날의 감상을 따라 색연필을 움직여 추상적인 무늬를 만든다. 다양한 색연필의 색상을 서로 스치고 겹치게 하고, 흩어진 형태의 배경을 보완하면서 작업한다. <Dispersion(blooming)>은 은빛 캔버스 위에 색연필로 밀도를 쌓아 꽃피듯 퍼져 나오는 빛의 광선을 닮은 형태가 특징이다. 또한 <Dispersion(erasing)> 연작은 드로잉한 색연필의 흔적을 지워가면서 서로 다른 레이어가 자연스럽게 겹쳐 반투명한 겹을 만든다. 그는 채색에 의도를 담기보다 순간의 투명성에 반응하면서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 <Dispersion(blooming)>, 2023, Colorpencil on silver acrylic paint canvas, 53x45.5cm |
 | <Dispersion(erasing)>, 2023, Colorpencil on silver acrylic paint canvas, 45.5x33.4cm |
이 외에도 이번 전시를 통해 2019~2020년 작품 <Dew Shadow>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이슬 그림자를 상상하며 은빛으로 흩뿌려진 먼지나 공기 입자처럼 표현하였다. 아크릴 물감과 펄 입자의 미디엄을 사용하여 빗방울이 위에서 떨어지거나 눈이 가볍게 흩어지는 모습을 은유한다. 대부분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이 작품은 실제로 앞에 마주하여 몸을 움직여 보길 바란다. 그 순간 보이지 않던 이슬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
 | <Dew Shadow(light pale purple dust)>, 2019, Acrylic and pearl medium on silver paint canvas, 97x97cm |
윤여동 작가는 금속을 다양한 색과 형태로 식기와 촛대 등의 생활 기물, 크고 작은 오브제, 설치 작품 등을 만든다. 작업 방식은 재료를 틀에 넣고 응고시켜 모양을 만드는 주물방식, 손으로 두드려 형태를 만드는 판금과 단조 등 다양하다. 그는 이러한 다양함에 대하여 ‘정중동(靜中動)’으로 표현한다. 정중동은 정지하고 머물러 있는 사물임에도 가녀린 떨림과 흔들림을 간직하고, 움직임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조용한 가운데 어떠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공간 속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존재하는 빛처럼 느껴진다.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 <Twin>, 2022, Aluminium, brass, 20x10x24cm (사진 : 핸들위드케어 촬영, 2022) |
윤여동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형태의 금속조형물인 <Quelle heure est-il?>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작년 가을 프랑스 여행 중 ‘시계초’라는 꽃을 보았고, 그 모습이 마음에 남아 작년 연말부터 작품을 구상하였다. 신비롭게 생긴 꽃을 보면서 시계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초침과 스프링처럼 줄기가 엉켜있는 모습으로 재해석하여 작품에 담았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금속 화분을 만들어 식물 디자이너와 협업한 신작도 소개한다. |
 | <Quelle heure est-il?>, 2023, 능소화 덩쿨, 마사토, Copper, brass, nickel, steel, 106x106x120cm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또 다른 신작 중 <Blind>은 찰랑거리는 문발을 떠올리며 작업하였다. 문발을 구성하는 구슬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느낌을 형상화하여 작은 조각을 만들고, 그 조각들을 엮어 하나의 면을 이루도록 제작하였다. 관람객이 이 작품과 마주했을 때 빛을 머금은 조각의 표면, 금속조각들로 이어진 틈 사이에 스며드는 빛을 충분히 느끼길 바란다.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이번 전시는 ‘빛’이라는 키워드를 품은 두 작가의 회화와 금속공예 작품을 통해 우리 삶에 익숙한 공간을 비추는 빛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담아내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은색의 회화와 금속 작품이 일렁이는 빛과 만났을 때의 패턴이 화음처럼 느껴져 <Silver Sound>라는 표현을 빌려왔다. “슬픔으로 상처 입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음악은 은빛 화음으로 빠르게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When griping grief the heart doth wound, and doleful dumps the mind opresses, then music, with her silver sound, with speedy help doth lend redress).”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의 마음에 ‘은빛 화음’이 전해지길 소망한다. 전시공간인 서윤정회사 쇼룸은 큰 창이 사방으로 뚫려있어 계절의 변화를 시간대별로 느낄 수 있다. 햇빛이 들어올 땐 작품 표면에 일렁이는 빛과 그림자의 리듬을 따르고, 흐린 날에는 어둠 속 한 점 빛줄기처럼 느끼고, 비가 내리는 날은 창문에 맺힌 빗방울과 작품을 모두 마음 가득 담아주었으면 한다. |
 | <오희원 · 윤여동 2인전 : Silver Sound> 전경, 서윤정회사, 서울, 양이언 촬영(2023. 07. 03) |
작가 오희원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은분 캔버스 바탕에 유성 색연필을 드로잉한 <Dispersion(분산)> 추상 회화 연작을 주요하게 소개한다. 빛의 반사, 은분의 투명성에 반응하는 화면은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화면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회화는 바라본 유체의 자연을 물질로 가시화하면서 대기, 빛의 번짐과 같은 비가시적 생성물들의 회화적 출현을 의도한다. 그러한 시선에 기반한 투명한 순간들을 화면에 투영해오고 있다. |  | |
작가 윤여동
금속을 다양한 색과 형태, 방법으로 가공해 생활 기물, 오브제 그리고 설치 작품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작업을 <정중동(靜中動)>으로 표현하며, 이는 움직임을 내포한 작가의 작업을 설명하는데 더없이 적절하다. 신라시대 금관의 조형적 아름다움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언제나 '흔들린다'는 것을 전제로 작업 세계를 전개하는데, 이는 반드시 흘러가고야 마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진 : 엘르코리아 촬영, 2022) |  | |
기획 · 글 이시우 건축학을 전공하고 정책연구기관에서 석사연구원으로 일하며 도시설계 및 자원순환 분야를 연구했다. 지금은 기획자로서 작가와 공간을 이어주고, 작품이 관람객의 마음에 닿길 바라며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 |
Museum Visitor, You! siumuseum@gmail.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