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 on Canvas⟫는 ‘레이어’ 및 ‘구축’이라는 키워드로 출발하여 작가의 작업 영역을 하나의 유기적 캔버스로 상상하면서 기획되었다. 정현지 작가에게 캔버스는 그가 설정한 물리적 프레임에 한정되면서도, 때로는 대공간을 점유하는 조형물로 확장된다.
정현지 작가는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유럽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평면과 입체의 구분을 해체하며, 두 요소 간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건축적 요소, 공간의 구조적 특징, 이로부터 파생된 재료 등에 영감을 받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의 캔버스 속에서 해체되고 재조합되어 조형적으로 풀이된다.
작가의 작업은 가죽, 명주 등 평면적 재료를 조형적으로 환원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가 설정한 캔버스에 구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소개하는 가죽 작업 <Leather Construct>를 집중적으로 전면에 배치하고, 건축물 및 공간의 물리적 특징과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Bricks> 신작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 연작은 재료, 공간, 작가의 해석이 교차하는 구축의 미학을 섬세하고 의미 있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가죽 신작 15점은 물성과 조형성, 시각적 효과 등을 모두 연구한 결과물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2018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본 작업에서 평면적인 재료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가죽의 다양한 색상과 질감을 하나의 형상 안에 담아 재료의 물리적 잠재력을 연구했다. 또한 가죽 작업의 형태는 벽돌, 타일, 기둥, 구조 등 공간 요소들을 참조하였다.
작업을 위해 작가는 가장 먼저 하나의 도형 안에서 어떻게 가죽을 조합할지 계획하고 배치했다. 그리고 가죽의 앞면, 옆면, 뒷면의 서로 다른 색상과 질감, 레이어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도록 얇게 커팅한 후 나란히 겹쳐 붙인 다음 입체적인 형태로 만들었다. 사각형 프레임 속 바탕은 의도적으로 담백하게 처리하고, 재료의 기하학적 패턴이 갖는 밀도와 형태를 강조하며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이를 통해 작가는 단순한 재료인 가죽만으로 작업의 새로운 층위를 제안하는 듯하다.
작가는 스위스 ECAL 재학 중 에르메스(Hermès)의 ⟪Petit H⟫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 가죽 물성을 접했다. 이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에 여운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가죽 특유의 질감과 두께, 시간에 따라 변하는 물리적 특성으로부터 조형적 영감을 받았다. 또한 가죽 시리즈는 작업의 정체성과 방향성이 흔들리던 시기에 천천히 축적된 조형적 탐색의 결과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깊은 애정과 설렘이 함께했다고 전했다.
가죽과 명주는 서로 다른 물성을 가진 재료다. 그러나 사물과 공간을 인식하는 작가의 고유한 시선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두 재료는 같은 흐름 안에 놓인다. 명주를 재료로 한 <Bricks> 연작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건축적 모티브를 향한 관심과 이를 조형 언어로 환원하는 구축의 개념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얇고 유연한 평면 재료를 여러 겹 이어 붙여 3차원적 구조로 전개한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건축물 매스를 인식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건축물이나 공간의 구조, 형태, 색상 등이 그의 해석을 통해 패턴화되고, 건축공간을 분할하고 조합하듯 평면적 패턴을 입체적 형태로 구축하여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은 조각보에 사용되는 기법인 '쌈솔' 방식으로 구조를 만들고 감침질을 통해 입체로 이어 나가는 형식으로 구축되었다. 특히 천의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물성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 별도의 프레임 없이 작업하였다. 그 결과 형태적으로는 제약이 있지만, 프레임이 제거된 방식이 구조의 뼈대를 대신하면서 천 고유의 부드러운 곡선이 모서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작업을 향한 이러한 접근은 재료의 물성과 조형성 간의 균형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실천일 것이다. 또한 명주로 만든 형태는 물성이 얇고 반투명하여 빛을 투과하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므로 명주의 색상에 따라 빛을 머금은 모습도 눈여겨볼 만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캔버스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경험과 기억이 모여 캔버스 위를 채우듯 이번 전시가 그 마음에 한 겹 더, 그리고 깊이 스며들기를 바란다